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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 게임에서 경험하는 실패의 원형

An essay on how gaming mirrors life’s challenges and fosters resilience through infinite play.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인생의 연극과 구경거리 전체 뿐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구경거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또한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그야말로 영원에 걸쳐서 물릴 줄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부르짖는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거듭해서 자기 자신을 필요로 하고 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뭐라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신(circulus vitiosus deus) 아닌가? - 『선악의 저편』 56절. [1]

1.

필연적인 고통의 문제 앞에서 같은 선택만이 존재하는 무거움과 진지함 대신 조롱과 경멸 그리고 유머로써 동일하고도 무한한 권태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즐기는 것. 그렇게 우리의 삶에 영원의 삶을 새기는 것 [2]. 이것은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는 체념이 아니다. 결과는 상관없다. 시도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실패마저 끌어안고 기쁘게 세계의 벽에 도전한다.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은 가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초인이 된다.

게임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가 바로 이것이다. 승리의 달콤함이나 보상으로 얻는 성취가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찬란한 성공에 집중하면, 모든 선택은 단 하나의 최선인 정답과 질서 안에서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러한 성공에 취할 수 있으나, 이것이 반복된다면 선택의 주체는 사라지고 어떠한 새로운 가치도 창조하지 못하며 쉽게 권태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오히려 게임은 우리에게 무한한 실패를 제공하며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경험을 창조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간다.

라프 코스터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을 응용하여, 게임에서의 재미는 연습과 학습에 달린 것이지 숙련도를 사용하는 것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3] 도전이 아닌 것에서는 안정적이지만 결국 지루해지고, 반대로 본인의 역량을 넘어선 과제 앞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결국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 - 게임을 끄고 다른 일을 하러 가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관점은 심리적 보상이라는 동기만을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보상이 있다는 확신이 없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초인인가? 아니면 그저 가학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인가? 이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2.

우선 게임 그 자체가 아닌, 게임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능동적인 매체인 만큼 인간이 가진 어떤 특성이 게임이 가진 속성을 통해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치로써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어떤 특수한 놀이가 아니라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굴 벽화에 주로 묘사된 것은 들소, 말, 털코끼리 같은 대형 야생 동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동물들은 당시 인류가 가장 흔하게 사냥하여 식량으로 삼았던 종들이 아니였다. 예를 들어 라스코 벽화 유적의 뼈 퇴적물에서 순록 뼈가 가장 많았지만, 정작 동굴 벽화에서는 이런 종류의 순록이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4]. 즉, 짐승들을 사냥하고 싶은 의지에 대한 표명은 단순히 주술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도 있고, 위험한 현실에서의 사냥 시도 전에 인간이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시뮬레이션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 역시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복에 의지하는 인간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며 연습을 해보는 인간이 생존에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신경생리학적으로도 신체의 메커니즘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실패에 대응할 수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행동을 수행 하기 위해 예측을 한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상하는 기댓값이 현실에서의 실제 결과와 다를 때 인간은 도파민을 분출한다. 성취를 위해 노력하여 마침내 그것을 달성하였을 때에는 인간은 엔도르핀을 분출한다. 반대로 던진 창이 빗나가 실패 하였을 때에도 실망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의욕과 흥미를 부여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 하위징아의 “놀이는 문화에 선행한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규칙과 제약이 적용된 현실 세계의 시뮬라크르를 최초의 예술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게임 혹은 놀이는 본질적으로 허구 안에서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상상을 현실에 적용 시키며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성장하고, 결국에는 성취를 이루어내는 선순환 속에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3.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을 바라본다면, 디지털 게임이 등장 한 것은 기술의 발달 이전에 더욱 공고한 가상의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인간의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와 그림으로 표현하고, 규칙을 통해 Magic Circle 속에서 체현하며 삶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전의 놀이와 달리 디지털 게임은 그래픽과 깊은 상호작용을 통해 심도있는 가상성(Virtuality)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가상성은 인간에게 유한한 시공간에서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에 개입한 자신의 주체성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거리감을 제공한다.

따라서 거리감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개인이 가상에서 겪게 되는 실패를 포함한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주게 된다. 이것은 비단 게임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 등에서도 비극을 읽을 때의 심리적인 소모가 일어날 때 독자가 지속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준다. 가상에 몰입하기 때문에 허구의 실패가 비로소 나의 실패로써 다가와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동시에 가상에서 떨어져 경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비극을 지속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은 시험과 같다. 시험과 경쟁은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치뤄야 하는 고난이며 재시도는 허용되지 않고 실패의 대가는 냉혹하다. 이것은 분명 불쾌한 경험이다. 하지만 실패를 외면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 안에서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몰입을 함과 동시에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을 실패가 얼마든지 용인되는 게임의 역할이 여기서 부각된다.

4.

그런데 가상성을 평상시 현실의 자아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로 정의해보면 가상성은 척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수가 있다.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 CLT)에 따르면 지각된 가상성에서 비롯된 해석 수준의 차이에 따라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사고 방식 및 행동의 변화가 존재한다 [5]. 가상성이 높은 상황에서 개인은 심리적 거리를 크게 느끼며 상위 해석 수준의 사고 방식을 하는 반면, 낮은 상황에서는 하위 해석 수준의 사고를 추구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록 세부적인 요소를 도출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추출하여 추상적인 내용을 머릿속에서 구상하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의 원인의 탐색 방향에 대한 차이도 만들어낸다 [6]. 가상성이 높은 상황과 낮은 상황에서 개인이 선호하는 방향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방향에 따라서도 감정과 행동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歸因)이라 칭한다. 귀인은 내적 귀인과 외적인 귀인으로 나뉜다. 내적 귀인은 결과에 대해 스스로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외적 귀인은 나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재능 부족, 또는 운으로 탓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귀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심리적인 도피처로써 잘못된 방향으로의 귀인이 일어나게 되면 개인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원인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위의 해석수준이론에서 예상 가능하듯이, 게임과 같은 가상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충분한 심리적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 내부의 요인에 무게를 두고 결과의 원인을 바라보게 된다. 내적 귀인을 통해 자신의 선택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시공간을 초월하면서도 주체와 자아를 잃지 않는 회귀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현실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골디락스 영역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가고 있다. 지난 5월, Unreal Engine 5으로 제작된 바디캠 스타일 FPS “Unrecord”는 사기 의혹을 받을 정도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실적인 그래픽 때문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AI 프로필을 통해 현실을 반영한 가상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덧씌우며 실제를 감추고 도피한다. 오히려 가상의 물결이 범람하여 현실을 뒤엎는 때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실패를 경험 하였을 때, 심리적 거리 또한 줄어듦에 따라 정말로 본인의 실패라고 뼈 아프게 경험하게 되고 이는, 무의식적으로 외적 귀인, 본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운 또는 환경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경향이 커질 수 있게 된다. 게임이 게임으로서의 지위가 사라지고 실패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가상성이 사라진 환경에서 인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실패를 회피하며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즉 불변하는 자신에 대한 주체성과 게임의 실패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시대이다.

5. GG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플레이어들은 초인인가? 아니면 그저 가학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인가? 이에 대한 답은 게임이라는 요소 만으로는 대답할 수 없다. 이것은 비단 게임이 지닌 스토리텔링적인 매체의 특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을 플레이 하는 인간의 태도로 인해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을 단순 유희로써, 바라본다면 그것은 권태 속에서 과거에서 겪었던 만큼의 자극을 다시 찾기 위해 애쓰는 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게임을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보상의 제공처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미래가 제시하는 절대적인 희망을 위해 선택이 무의미하며 결과가 모든 가치를 지닌 주체성이 사라진 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게임은 실패를 긍정한다. 하지만 고통은 실재한다. 그럼에도 영원에 걸쳐서 ‘처음부터 다시(da capo)’라고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극복을 통한 의지의 표명이다. 이제 시뮬레이션은 끝났다. 이제 현실에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황혼을 즐길 시간이다.

References

[1]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8, p.134 [2] “우리의 삶에 영원의 형상을 새기자! 이 사상에는 우리의 삶을 무상하다고 경멸하며, 다른 어떤 불확실한 삶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가르치는 그 모든 종교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오윤희, 육혜원 옮김, 꿈결, 2017, p.300~301) [3] 라프 코스터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유창석,전유택 역, 길벗, 2017 [4] Phillips, A. (2019). Marshall H. Lewis, Viktor Frankl and the Book of Job: A Search for Meaning. [5] Trope, Yaacov, and Nira Liberman. “Construal-level theory of psychological distance.” Psychological review 117.2 (2010): 440. [6] 정의준, 김혜영, 유승호 “소비자 태도와 행위에 대한 이론적 접근: 해석 수준 이론을 중심으로” 사회와 이론 21 pp.378-411 (2012)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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